나의 영화 감상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chansong 2019. 7. 10. 08:57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고  

 

봉준호 감독의 단편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사회학과 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검사가 나와 사회악과 범죄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자신이 말하는 정의나 이론과 달리 위선적이다. 주제가 너무 뚜렷해서 코믹하다고까지 느꼈다. 하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젊은이의 애정과 순수함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의 작품 설국 열차는 빙산을 지나가는 장면이 지나치게 길어 좀 지루했던 기억이 있다. 그에 비해 기생충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극단의 상류층인 박 사장과 하류층인 기태네 가족, 영화에서 그들은 서로 비난하거나 드러나게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사회현상이나 인간의 모순, 계급을 말함에도, 제목도 그걸 암시하는데도 기생충이 누굴까 고민하게 만든다. 이유가 어디 있는가 생각해 보면 누구도 그들의 삶을 평가하는데 개입한 흔적이 없다. 그냥 그들의 삶과 행동을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판단은 관객의 몫일 것이다. 그래서 여운이 길다.

  이 작품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72회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역시 상을 받기에 충분하구나, 손뼉을 쳤다.

  기철네 가족은 반지하에 산다. 모두 백수다. 아들 기우는 대학입시에 연속해서 실패해 4수중이다. 어느 날 명문대 생 친구 민혁이 수석 하나를 들고 찾아온다. 마치 이 집에 행운을 가져다 줄 것처럼. 민혁은 교환학생을 가면서 그가 맡은 고액 과외 자리를 기우에게 물려준다. 기우의 과외 일자리를 선두로 여동생은 미술 과외 선생, 엄마는 가사 도우미, 아빠는 운전기사로 모두 박사장네 집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불법도 마다 않는다. 가짜 명문대 졸업장을 만들고, 여동생은 가보지도 않은 유학파임을 내세우고 운전기사를 몰아내고 아빠를 앉히기 위해 딸은 박사장의 차에 자기 팬티를 벗어 운전기사의 행실을 문제 삼게 만든다. 가정부를 쫒아내기 위해 복숭아 알러지가 있는 가정부에게 복숭아털을 뿌리는 등, 그들은 사기에 가까운 술수를 부린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장면들이 계속될 때 나는 코미디를 보는 줄 알았다.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너무 현실성이 부족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서 나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우네 가족은 반지하의 우중충한 집에서, 좀 미안하지만 천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창문 앞에서 술 먹은 이가 오줌을 내리 깔기는 모습을 시시 때때로 봐야하고, 그래서 물을 퍼다 그에게 들이 붓고, 정말 밑바닥 삶의 전형을 보여준다. 생활뿐인가, 집에 가려면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저지대, 영화에서 우연인 것은 없다. 기태네는 공간적으로는 저 아래 낮은 곳, 거기서 또 반지하에 살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현실 상황이나 그들이 극복하기 힘든 조건들을 여러 측면에서 장치해 놓은 거란 생각이 든다.

  그들은 적응력이 뛰어나다. 아버지 기태는 스페어 운전수의 경험을 토대로 박 사장의 능숙한 네비게이션이 되고, 딸 기정은 인터넷에서 찾아낸 지식으로 신뢰받는 미술 심리 치료 선생이 된다. 통제 불능의 아이를 잘 다스려 하루아침에 얌전한 아이로 길들이는 신뢰를 얻는 유능함까지, 모든 게 순조롭다. 이때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해마다 이 집의 막내 다솜이 생일이 되면 캠핑을 간다는 걸 아는 전에 있던 가사 도우미 문광은 몹시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 머리까지 시꺼먼 우비로 덮인 모습으로 찾아와 앞으로 있을 어마어마한 사건을 짐작케 한다. 난 사실 이 장면에서 봉준호 감독이나 시나리오를 쓴 작가에게 큰 찬사를 보내고 싶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 지하에 지하, 집안의 계단을 끝도 없이 내려가고, 꼬불꼬불한 길을 돌고 돌아가면 마치 베트남 전쟁 때 사용한 땅굴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 마치 기태네의 삶과도 같은 그런 미로 같은 길, 난 이걸 보고 그들의 상상력에 감탄을 했다. 밑바닥이라 여겼던 우리 삶이 지하를 넘어 더 아래, 감히 상상해낼 수도 없이 흔치 않는 공간, 전쟁 같은 천재지변이 있을 때 숨으려고 만든 공간, 그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은 고단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이 전쟁이라는 걸 말하고 있을까? 내가 보는 영화에서는 아마 이것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상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는 마을에서 그것도 반지하인 듯 지하인 듯 사는 기태네 가족, 그래도 그들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땅굴 공간은 밖으로 나올 수도, 빛을 볼 수도 없다. 세상과 소통도 안 되는 그야말로 땅굴이다. 냉장고가 있고 변기가 있고 책도 있어 사람이 사는 공간이지만, 사업 실패로 사채업자의 괴롭힘 때문에 막장까지 몰린 사람, 가사 도우미의 남편이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격리된 채 이처럼 죽은 목숨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감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의 밑바닥 아래 또 땅굴을 파고 사는 세상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공간에서 부부의 단단한 애정과 연민이 바깥 세계보다 진하게 펼쳐지기도 하고,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이 전기 스위치를 누르는 행동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문광은 가정부를 못하게 되자 새로 가정부가 된 기우 어머니에게 지하에 있는 남편을 보살펴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다. 그가 돈을 보내주겠다고 하면서. 문광은 그동안 땅굴에 사는 남편에게 준 음식은 절대 박사장네서 훔쳐온 것이 아니고 모든 음식들은 다 자기 돈으로 산 거라 한다. 아무리 가난하고 막장으로 몰려도 도둑질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걸까? 그럼 기태네 가족은 사기와 도둑질을 했는가? 그렇다고 쉽게 비난할 수가 없다. 그들도 살기 위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누구도 나쁜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다만 살기 위해 상황이 그럴 뿐 나쁜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극도의 절망 앞에서 나도 그러지 않을 거라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문광도 기태네 가족에게 일자리를 빼앗겼지만 원망이나 분노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남편이 거기서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면 고마울 뿐, 그들의 사기 행각을 고발할 생각도 없다. 그러면 가진 자인 박사장네 가족은 어떤가. 그들도 마찬가지다. 단지 열심히 일하고 좀 잘 났고 아이들의 과외 선생님을 구해 애들을 키우는 어머니일 뿐 요즘 사회에서 유행하는 갑질이나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이 영화의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을 선과 악으로 구분해서 우리 사회를 해석을 해주거나 설교를 했다면 재미없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생각을 해본다. 혹시 선악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재미가 없다거나 결론이 무어냐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 영화의 격이 한 층 올라갔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박 사장이나 그의 아내가 저 아랫동네 사람들의 냄새라고 하는 것, 이를테면 빨래가 잘 마르지 않을 때 나는 시궁창 냄새 같은 게 난다고 하지만 그것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것일 뿐 그들을 우습게 여기거나 사회나 계급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행동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다. 나는 이게 감독이 삶을 바라보는 애정에서 나온 거라 생각한다. 가지지 못한 자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상황과 삶을 개입 없이 보여줌으로 오히려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 악이라기보다는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 이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감독의 애정과 높은 안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만 기우는 허황한 꿈을 꾸는 젊은이로 그려진다. 자기가 가르치는 소담이와 연애를 계획하고 결혼을 해 이 집이 자기 것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어쩜 이 가족들 모두 그런 종류의 욕망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남의 일자리를 뺏고 박 사장 가족이 휴가를 갔을 때 마치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박 사장 집이 자기 집 인양 도우미, 남의 집 운전기사이면서 양주를 마시고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한다. 이런 욕망은 조금씩은 모든 인간에게 있을 거라 짐작이 된다. 다만 그와 같은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기태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다솜은 정신적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박사장네는 그 원인이 된 생일을 피해 다솜의 생일이면 캠핑을 하고 있었다. 사건이 나던 날도 마찬가지, 캠핑을 가지만 여의치 못해 집으로 돌아오는 그들, 넓은 마당에 파티장이 꾸려지고 다솜의 미술 선생인 기정이 생일 케이크를 가지고 가면 마음의 무서움을 극복한 기념으로 다솜이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계획이었다. 아주 멋진 생일 파티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 땅굴에서 문광의 남편이 칼을 들고 올라온 것이다. 생일 파티는 엉망이 되고 기정이 칼에 찔려 죽고 만다. 도우미 남편도 죽고 박 사장도 죽고 이때 기태도 사람을 죽이는 사고를 친다. 누가 누구에 분노해서, 또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오래 땅 속에서 산 사람이 햇살과 함께 보는 화려한 파티, 딸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본 기태, 나는 이 장면을 사실 제대로 보지 못했다. 너무 끔찍해 눈을 가렸다. 하지만 왜 사람을 죽였냐고 누구를 비난 하거나 욕할 상황이 아니란 걸 안다. 살인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악의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서 섣불리 분노나 계급투쟁으로서 살인을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래서 쉽게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감독이 보여주는 휴머니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을 욕하고 악으로 보기보다 그들의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줌으로 우리들의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다. 부자라고 악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무조건 선으로 그리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도 계층을 구분하지도 않는다. 살인을 저지른 기태를 경찰은 끝내 찾지 못한다. 동네 cctv 어디에도 모습을 볼 수 없다. 주차장을 통해 문광의 남편이 살던 그 땅굴로 숨었기 때문이다. 기가 막힌 설정이다. 인간이 최악으로 떨어질 수 있는 막장, 살인을 저지른 기태가 갈 수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다.

  캠핑을 취소하고 박사장네가 집으로 돌아오는 중, 기태네 네 식구는 급하게 양주파티를 벌이던 거실을 치우느라 분주하다. 화려한 박 사장의 거실을 간신히 빠져나온 기태는 집으로 돌아온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환한 박사장의 거실과 달리 기태네 동네와 집은 폭우가 쏟아져 가구들이 둥 둥 떠다닌다. 몸이 반쯤 잠기는 마을을 걸어오는 기태, 박사장 정원에서는 아름다운 성악가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한쪽에서는 오물이 넘치는 변기에 앉아 절망의 담배를 피워 물고, 한쪽에서는 아들의 취미를 위한 미국에서 산 텐트가 쳐지고, 그런가 하면 이재민이 되어 동네 체육관에서 밤을 새우는 기태네,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 절망적인 상황들, 이런 것들이 기태네 가족의 거짓말을 밉게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기우는 아버지를 찾지 못한 채 민혁이 가져온 수석을 자연으로 돌려보냈듯 자신도 헛된 욕망을 버리고 열심히 일을 하기로 한다. 어쩌면 수석이 말 그대로 돌덩어리, 즉 헛된 꿈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수석을 버림으로 헛된 꿈을 버리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닐지. 기태 네의 사기에 가까운 거짓말들이 꿈이었다면 이제는 진정한 현실로 돌아와 제 삶을 찾아가지 않을까. 문득 지하실에서 가사 도우미 남편이 스카우트 시절 배운 대로 전기 단추를 누른 것을 생각해 내는 기우, 그 집을 찾아간다. 예상했던 대로 깜박이는 지붕 밑 외부 등, 기우는 등불이 꺼졌다 켜지는 숫자로 암호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세상에 대고 말을 하고 있었다. 기우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족에게, 세상에게 보내는 암호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기우는 열심히 일해서 박 사장 집을 사기로 결심한다. 과외선생님으로 갔을 때의 허황된 욕망이 아닌 현실성을 인식한 말이었다. 그래서 그 안에 갇힌 아버지를 꼭 구하겠다고, 그러니 아버지는 그냥 돌아오면 된다고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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