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의 나비'를 보고
어둠 속의 자유, 나비 속에서의 희망
이 작품은 벨기에의 라울 세르베 Raoul Servais(1928~) 감독의 영화다. 길이로 보면 채 8분이 안 된다. 그런데 이 짧은 영화가 말하는 것은 몇 시간, 아니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잘못된 체제나 억압 등을 상징해 결코 짧지 않고 가볍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왔듯이 초현실주의 화가 ‘텔보’의 회화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작품 ‘밤의 나비’는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말을 한 마디도 없다. 단지 몇 안 되는 그림의 움직임만으로 말을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처음에는 뭔가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잡히지 않았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 쯤이 되어서 무엇인지 거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알아차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한 의미와 상징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가 멋이 있고 대단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알아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렇게 짧은 장면 몇 개로 이렇게 거대한 의미를 담고 있음에 감탄을 하게 된다.
영화의 배경은 기차역의 대합실로 추정이 된다. 천정에 대달려 있는 등에 나비가 갇혀 움직인다. 그러다가 나비가 등에서 나와 돌아다니다. 역장인 듯, 지휘자인 듯, 아마 역이니 역장이나 관리인 일 거라 추정을 하는데 지휘봉을 들고 있어 지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움직임이 없는 애매한 남자, 그 지휘봉에 나비가 쨍하고 스쳐지나간다. 그러자 지휘봉에서 음악이 나오기 흘러나오고 줄지어 나오는 종이에 암호 같은 기호들이 계속 찍혀 나온다. 음악이 계속되면서 대합실에 두 여자가 앉아 있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여자, 아니 파이지 않은 드레스 사이 가슴만 드러난 여자. 그 유두에 나비가 앉는다. 여성의 젖꼭지에 나비가 앉자 그녀의 눈에 생기가 돌고 그녀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만히 영화를 되돌아보면 영화에서 나비가 등장하기 전 모든 시간은 죽은 듯 움직임이 없다. 그러다가 나비가 나타나 앉거나 스쳐 지나가면 정지된 시간이 움직이고 죽은 것 같은 색깔이 돌아온다. 생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사물과 사람들이 살아서 움직인다. 정지된 시계가 그렇고 관리자인 듯, 인형처럼 서있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비가 젖꼭지에 앉자 여자들이 움직인다. 이렇듯 나비는 움직임이 없는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기차역 안의 모든 것을 되살려 놓고 어두운 세상 밖 밤하늘을 자유로이 날아가는 나비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유일까? 억압된 자아일까? 혹은 정치권력의 압력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나비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일까?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나비는 푸른빛으로 변해 생동감을 찾고 멈추어 버린 밤의 세계를 살려놓고 파랗게 선명한 색을 띠고 눈부신 듯 날아다니다.
가슴을 노출시킨 두 여인들 옆에는 그들의 옆면을 비추는 거울이 있었다. 여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거울 속에서 자신과 똑 같은 자신을 끌어낸다. 그리고는 함께 춤을 춘다.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거울 속에서 꺼낸 여자들은 분명 여자들의 자아임이 틀림없다. 어쩌면 그동안 억압되고 자유롭지 못한 자아를 찾은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비는 정지된 혹은 죽은 또는 억압된 세상에 무언가 깨어남을 알려주는 상징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다가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가 나비를 잡아 모자 속에 집어넣는다. 나비가 아직은 죽지 않았으므로 살아있는 세상이 완전히 정지된 것은 아니다. 남자가 모자 속에서 나비를 꺼내 긴 혓바닥을 내밀어 잡아먹는 것은 마치 뱀이 긴 혀를 내밀어 먹이를 낚아채는 것을 연상시킨다. 뱀은 분명 사악하고 사회에 독을 퍼트리는 존재다. 그 장면은 먹이를 발견하면 가차 없이 잡아먹는 잔인한 세상의 현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섬뜩하기조차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남자를 보자 여자가 두려워하며 혹시 자신의 발을 볼까 부채로 얼굴과 방금 전까지 춤을 추던 발을 가린다. 발은 무얼 상징할까.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말하지 않을까. 자신의 간신히 갖게 된 자유를 알까봐 가리는 것이라 추측된다. 그것은 금지된 것을 한 것을 가리려는 것, 어쩌면 권력자나 절대자들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금기를 깬 것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남자가 핀으로 나비를 찌르자 여자들의 모습이 거울처럼 깨지고 관리자인 듯 지휘자인 듯 남자의 지휘봉도 사라지고 음악도 나오지 않고 나비가 잡힌 뒤 세상도 모두 생명을 잃는다. 나비를 잡아먹은 남자는 현미경으로 나비를 관찰하고 잡은 나비를 표본으로 만든다. 시계가 고장이 나 시간이 멈추고 사람들은 정지된 채 움직임을 잃고 지휘봉이 망가지고 다시 어둠, 정지된 시간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비를 잡은 남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서 남자는 무엇을 상징할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사람? 사회 잘못된 관습? 물론 그것이 포함될 것이다. 이 남자는 이 사회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상징물일 것이다. 정치권력, 인권, 성차별
거기에 비해 여기서 나오는 여자는 억압받는 여성인 동시에 억압과 자유를 빼앗긴 모든 존재들을 대신하는 것은 아닐지, 나비가 앉자 시계가 잘 돌아가다 남자에게 잡혀 표본이 되자 제 자리로 돌아간 시계, 그것은 위에서 말하는 것들의 후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감독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차별과 부당성을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 속에서 자유를 되찾고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싶은 욕망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도 정치적으로나 여성과 남성의 차별, 인권이 무시되는 곳이 많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정치권력이 곳곳에서 존재한다. 세상에서 개인과 사회 국가들의 질서와 행복을 되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에서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시계는 12시 7분 정도로 시작된다. 영화의 대부분의 배경도 어둡다. 나비가 시계의 분침을 스치면서 시간이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나비가 죽음으로 다시 시계는 앞으로 가지 않는다. 이것은 아직도 세상은 차별과 억압, 그 속에서 잃어버린 자아, 변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어둡고 모든 것이 정지된 암울한 시간, 시대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나비가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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