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흐르는 잠

chansong 2015. 2. 21. 07:29

 

 

 

흐르는 잠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을 지나고 있었다

한 사내가 가방을 내려놓고 집을 짓는다

LA 다저스 야구 모자로 지붕을 드리우고

달팽이처럼 집을 입었다 벗었다

그것도 귀찮으면 아스콘 바닥을 짊어지는 사내

라면 박스 밖에서 시커먼 발톱이

늘어난 양말에 구멍을 뚫는다

지나가는 여자들이 허벅지를 드러내고

달력의 모델처럼 벽을 장식하는 집

바람이 운동화의 먼지를 털면

사내가 쇼윈도를 타고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화장품 광고 모델을 향해 쑤욱 입을 내민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빗장을 걸어도

마음의 쪽방을 버리면 세상이 다 제 집이라는 듯

꿈으로 가는 길은 평화롭다

젊은 경비원이 눈에 불을 켠다

모자 하나로 40도의 사막을 걷던 사내가

목줄 푼 강아지처럼 뒷걸음을 쳤다

또 다시 흐르는 집을 찾아

헤진 배낭에 구겨진 가슴을 집어넣는 사내

지퍼를 올릴수록 내장들이 가방 밖으로 튀어 나온다

지하철을 나오는 계단의 차양막

짙은 그림자가 몸져눕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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