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의 길
달빛이 물 위에 길을 낸다
지나온 길목마다 망초 쇠뜨기가 자라고
배고팠던 세월도 물 위로 올라온다
절반의 사람이 서울을 가고 또 몇은 시내로 나가
남은 사람조차 산을 오르는 고향
한줄기 소나기에도 몸을 뒤집어
벌겋게 다리를 절던 방죽은
여기저기 떠돌던 물풀을 모아 마을을 이루었다
물 밑에 가라앉은 하늘이 빗장을 풀어
부서지는 달빛에게 길을 내어주는 고향은
얼마나 맑은 거울인가!
오래 전에 잊어버린 발자국이 둑 밑을 나오고
각질처럼 일어나는 바람을 물결 밖으로 밀어내면
모르는 이가 끼어도 어색하지 않고
누군가 비집고 들어와도 좁지 않다
어깨를 맞대며 속눈썹 같이 떨리는 물살을 돌아 나오는 길
붉은 고추 몇 근 이고 갔던 빈 함지
머리에 인 친구가 저만치 걸어오고
갈갈거리는 달빛은 밤 깊은 줄 모르고 우리를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