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세탁기
때 묻은 옷을 세탁기에서 꺼낸다
입에 거품을 문 채 헝클어진 머리
뒤틀린 무릎에 엎드려 눈물을 짠다
가슴의 스위치를 빼면
내 생 가득 메운 그리움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나를 맹목적으로 돌린다
돌아가는 것은 계속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다
나는 이 관성이 싫어
오늘, 손빨래를 한다
거뭇한 목덜미와 그을린 손목
해석할 수 없는 행간을 더듬으며
먼 기억 속을 읽는다
구겨진 가슴 속
찌들어가는 오물처럼
켜켜이 쌓인 외로움
돌리고 돌리고
사람의 흔적 없는 세탁기에서
입에 거품을 문 채 누워있던 당신
낮선 이의 손에 맡겨
단추 하나로 완성해온 삶
올올이 묵은 고독을 빼면
오래된 관습을 헹구는 손끝으로 직진하는 햇살
베란다에 널린 시간들이 종일 눈을 껌벅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