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조각비누

chansong 2019. 12. 12. 11:17


조각 비누

30년 직장생활을 끝낸 남편이 돌아왔다 조각난 비누가 짐에서 떨어졌다 앙큼함이 사라져 속살 가득 금이 간 비누 조각, 주름 속엔 땟자국이 잔뜩, 오체투지로 남의 몸을 닦던 고요가 바닥을 뒹군다 낮에도 불을 켜는 화장실, 그가 씻은 영혼을 떠올리며 낡은 스타킹에 파편을 모은다 날이 밝아도, 전화가 와도 일어날 줄 모르는 남편처럼 문드러진 육신이 내 손을 잡았다 문댈수록 야위고 몽달이 되어가는 혼들이 내 몸을 닦는다 얼마나 많은 뼈를 깍았을까 또 얼마나 많은 치욕을 닦아냈을까 거품 속의 야윈 눈동자, 고막을 더듬는 물소리, 더 이상 남은 육신이 없다고 마지막 속살을 꺼낼 때 문득 남편도 문 닫힌 안방 저 너머, 더께 낀 세월을 닦을지 모른다고, 물방울 속에 어린 불빛을 들고 미끌미끌한 길을 가고 있을지 모른다고, 바닥에 있는 거품을 쓱, 쓱 쓸어내린다

 

 

연인

 


'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사랑, 누벨  (0) 2019.12.30
오래된 밥솥  (0) 2019.12.12
이사  (0) 2019.12.12
붙박이장  (0) 2019.12.12
위험한 닭장  (0) 2019.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