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밥솥
며칠 째 시를 쓰지 못한 어느 날
압력 밥솥에 불려놓은 쌀을 넣었어
요란하게 달려올 기차를 기다렸지만
기적 소리 대신 옆구리에 바람이 불었어
아차, 하는 순간 수증기가 빠져나가고
설익은 채 덜컹거리는 저녁
숯 냄새 번지는 소리가 고막 속을 달렸어
김이 새는 줄 모르고 기다려온 시간
타버린 밥을 버렸어
뱃속에서 검댕이가 쏟아졌어
시를 쓰는 일이 밥을 짓는 것 같았어
반쯤 들린 밥솥의 추처럼
머리 밑을 돌아나가는 생각들
탄내 나는 시가 삼중바닥을 긁고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거미줄
돌아보면 늘 뜸들지 않는 언어들
검게 탄 기억은 언제나 적막하고
상처는 제 속으로 길을 낸다고
누군가의 가슴 향해 걷는 가로등
준비되지 않은 저녁 식탁으로
누군가 돌아오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