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오래된 밥솥

chansong 2019. 12. 12. 11:18

 

 

오래된 밥솥

 

 

 

며칠 째 시를 쓰지 못한 어느 날

압력 밥솥에 불려놓은 쌀을 넣었어

요란하게 달려올 기차를 기다렸지만

기적 소리 대신 옆구리에 바람이 불었어

아차, 하는 순간 수증기가 빠져나가고

설익은 채 덜컹거리는 저녁

숯 냄새 번지는 소리가 고막 속을 달렸어

김이 새는 줄 모르고 기다려온 시간

 

타버린 밥을 버렸어

뱃속에서 검댕이가 쏟아졌어

시를 쓰는 일이 밥을 짓는 것 같았어

반쯤 들린 밥솥의 추처럼

머리 밑을 돌아나가는 생각들

탄내 나는 시가 삼중바닥을 긁고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거미줄

 

돌아보면 늘 뜸들지 않는 언어들

검게 탄 기억은 언제나 적막하고

상처는 제 속으로 길을 낸다고

누군가의 가슴 향해 걷는 가로등

준비되지 않은 저녁 식탁으로

누군가 돌아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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